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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대한민국을 배신한 4가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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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들 한국전쟁에 참전해서 절대적 도움을 준 미국을 혈맹이라고 여겨왔다. 그래서 미국의 요청이 있을때 많은 한국 국민의 반대 없이 베트남에도 아프카니스탄에도 이라크에도 파병을 해 신의를 지켰다. 그러나 우리가 역사적으로 되짚어 볼일이 있다. 이 혈맹이 과연 우리와 끝까지 함께 할 수 동지인지 말이다.

안타깝게도 지난 100년간 미국은 한국을 크게 4번 배신을 했다.

첫번째
1905년 9월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파견한 아시아 사절단이 대한제국을 찾았다. 고종과 대신들은 일본의 국권 침탈 위기 앞에서 '조미수호통상조약'에 따라 미국이 도와줄 것에 희망을 걸고 그들을 극진히 대접했다. 사절단장 윌리엄 태프트 전쟁부 장관이 일본에서 가쓰라 다로 총리와 '일본의 한국 지배를 승인한다'는 밀약을 이미 맺고 왔다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다. 사절단 방문 두 달 뒤 을사늑약이 체결돼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일제에 빼앗겼다.

두번째
1943년 3월 루스벨트와 국무장관 코델 헐이 워싱턴에서 영국 외상 앤서니 이든과 가진 회합 때 한국의 독립문제가 연합국 지도자들 사이에서 최초로 논의되었고 이때 신탁통치에 대한 공감을 영국과 이루었다. 이어 1943년 11월 22일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영국의 윈스턴 처칠, 중국의 장제스(장계석)와 함께 3국 수뇌 회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한국문제를 본격적으로 공식 논의하였다. 11월 27일 발표된 '카이로 선언'은 제3항에서 "한국인의 노예 상태에 유의, 한국을 해방하여 적당한 시기에 독립시킬 것"을 결의했지만 카이로 회담이 끝나자마자 장제스를 빼고 루스벨트와 처칠은 이란의 수도 테헤란으로 장소를 옮겨 소련의 스탈린을 만났다. 1943년 11월 28일, 소위 테헤란 회담으로 불린 미·영·소 3개국 정상회담에서 루스벨트는 "한국인이 완전한 독립을 얻기 전에 약 40년 간의 수습 기간(apprenticeship)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고, 스탈린은 이에 구두로 동의를 표하였다. 이런한 미국의 생각으로 2차 세계대전 종식 무렵인 1945년 2월에 열린 알타이 회담에서 소련에게서 대일전참전을 약속받았고, 이로 인해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로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후 소련이 북한에 진주하자 소련의 한반도 전체 점령을 저지하기 위해 미국은 일시적 경계선으로 38선을 그었다. 이를 경계로 미소 양국에 의해 분할점령되는 계기가 되었고 종전 후인 1945년 12월에는 모스크바 3상 회의에서 한국의 신탁통치가 확정되면서 이를 기점으로 국내의 좌우 양 진영의 대립은 돌이키기 어려워졌고, 결국 2년 후 남북 분단으로 되었다.

세번째
1950년 1월엔 미 국무장관 애치슨이 한국의 뒤통수를 쳤다. 미국의 극동 방위선을 알류샨열도·일본·오키나와·필리핀을 연결하는 선으로 정한다는 '애치슨 라인'을 발표하며 한국을 방위선 밖으로 빼버렸다. 이것은 김일성이 남침 도발을 더 편하게 결정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여 그해 6월에 한국전쟁이 발발하였다.

네번째
1971~1972년 미 국가안보보좌관 키신저는 중국 저우언라이(주은래)와 가진 비밀 회담에서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에서 배타적으로 이익을 공유'하기로 합의했다. 키신저는 미군이 철수할 경우 일본군이 한국에 주둔하는 상황도 거론했다. 키신저가 배석한 닉슨 대통령-저우언라이 회담 때, 닉슨은 "남이든 북이든 코리안은 충동적인 사람들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충동적이고 호전적인 사람들이 사건을 일으켜 우리 두 나라를 곤궁에 빠트리지 않도록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고 했다. 한국이 빠진 자리에서 한국의 운명을 가지고 놀았다.

이밖에도 북한정부 전복시 미국과 중국의 대동강 기점 양분설 및 유사시 일본군 개입설 등 소문도 있으나 이런 풍문 역시 경계 해야 할 것이다.

현실에 과거 역사가 반복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우리가 우리를 지킬 힘이 없다면 말이다.
특히 냉혹한 국제정세 속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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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3

헤리포터와아주까만여죄수님의 댓글

미국이 언제 우리를 위한 적이 있었나? 예전이 일제의 식민지 였다면 지금은 미국의 식민지 인거지. 매년 국방비 라는 명목으로 억단위도 아닌 조다위의 돈을 공납 하잖아. 힘이 없어 국민들 뼈빠지게 번돈을 다른나라 아가리에 쳐 넣어주는 한국 정치인들. 그리고 허울뿐인 대통령. 언제쯤 식민지 치하에서 벋어날 수 있을지. 그돈이면 수많은 복지정책으로 우리 삶이 더 나아질수 있을텐데...

축하합니다. 첫댓글 포인트 52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안티뿌라민님의 댓글

미국은 우방이 아니다.
미국을 위한 한국이다.
양키고홈~!!

카르페디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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