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식의 오늘-230504-아직 세상은 살만하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제가 미혼모에 임신 중인데 너무 배가 고픕니다. 당장은 돈이 없어서 염치없지만 부탁드려봅니다. 주문이 된다면 돈은 다음 주말 되기 전에 이체해드릴게요. 제발 부탁 좀 드립니다”

지난 29일, 배달요청주문서를 받아 든 분식집 사장 A씨, 고민에 빠졌습니다. ‘미혼모에 임신 중’이라는 단어가 가슴에 꽂혔기 때문입니다.

“주문 금액도 딱 최소주문금액에 맞춰서만 시켰더라구요. 지난 주문내역에도 전부 최소주문금액에 딱 맞는 주문이었습니다. 아 모르겠다. 거짓말이더라도 이건 보내주자.”

이틀 뒤 문자가 하나 왔습니다. “죄송스러운 부탁에도 음식을 보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음식값 14,500원도 계좌로 입금됐습니다.

아내와 함께 고객의 집을 찾았습니다. 무엇이든 돕고 싶은 마음에 음식이라도 채워주려고 냉장고 문을 열다 그만 눈물이 터집니다. 이틀 전 배달했던 밥과 죽이 밀폐용기에 나뉘어 담겨있었습니다. 아르바이트한 돈이 언제 들어올지 몰라 배고플 때 먹으려고 나눠 놓았다는 겁니다.

A씨 부부는 미역국을 끓여주고 병원에도 함께 가기로 했습니다. 몸 상태가 괜찮다면 가게로 나와 하루 2시간 정도 일하는 것은 어떻겠냐고 제안했습니다. 시켜만 주면 열심히 하겠다는 답변이 돌아옵니다. 검진 결과만 허락하면 세 사람은 다음 주부터 한 가게에서 일하게 됩니다.

“저는 그렇게 좋은 사람, 따뜻한 사람은 아닙니다. 애 아빠 입장에서 든 마음일 뿐 선행을 했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사장님들께 모든 외상 주문이 거짓과 나쁜 의도는 아니라는 점은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아직 세상은 살만하다.

신장식의 오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