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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없는 수박 우장춘의 숨겨진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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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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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국모를 시해하는데 앞장섰고
시신을 불태웠던 훈련대장 무장 우범선
일본으로 피신하여 일본여인과 결혼하여
철저하게 자신을 숨기고 살고있던 우범선을
베어버린 조선의 마지막 무인 고영근장군
우범선의 본향은 단양이다
그는 중인출신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궁궐을 지키는 수비대장이 되었다
당시 민씨일가의 세도와 러시아에 손을 내밀던
명성황후의 선택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우범선은 일본대사와 의기가 투합하여
작전명 여우사냥에 앞장섰다
그는 낭인들의 길잡이가 되었고
명성황후의 얼굴을 모르는 일본 낭인들에게
민비의 처소를 알려주었고
민비의 얼굴을 확인한후 명성황후가
죽었음을 일본 낭인들에게 확인시켜 주었다
그는 자신의 병사들을 시켜 명성황후의
시신을 이불에 싸서 뒷산으로 메고 올라와
시신을 불태워버렸다
어떤이들은 일본낭인들이 명성황후를
윤간한 후에 궁궐 구석진 옥호루 앞에서
시신에 석유를 붓고 불태웠다고 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우범선의 일기에 그내용이 적나라하게
적혀있고
당시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 볼때
일본 공사관에서는 황후시해를 조선인들의
세력다툼으로 몰고가려 했음이
여러 자료를 통해서 극명하게 드러나 있다
어쨋든 명성황후 시해 4년후 일본법정에
두사람의 조선인이 살인사건으로 기소되어
서있었다
피해자는 우범선 가해자는 고영근 이었다
일본법정 에서는 살인사건으로 명명하자
고영근이 발끈하며 말한다
'''나는 역적을 베었다 조선의 국모를 시해하고
불에 태운 조선의 역적을 벤것이다,,,
''''나를 범죄자라고 부르지 말라,,,,
이들은 총도 있었지만 총은 사용하지 않았다
우범선의 심장과 깊숙한곳을 고종께서
하사하신 장군도를 사용하여
조선의 백성들과 조선 무인들의 울분을
심어버린 것이었다
고영근은 일본법정에서 살인죄를 적용
사형을 선고받는다
하지만 조선은 힘이 없었지만
이 의인을 그냥 죽게 내버려 두지않았다
국왕과 실력자들의 외교노력으로
고영근을 조선으로 데리고 들어와서
조선의 형벌을 적용하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조선에 들어와서
바로 석방시켜버렸다
이후 석방된 고영근은 행방을 감춰버렸다
그는 마치 할일을 다했다는듯
모든 흔적을 다 지워버리고 사라져버린 것이다
우범선의 아들은 유명한 농학박사 우장춘박사다
씨없는 수박으로 유명한 사람이
바로 우범선과 일본인 처 사이에서 태어난
바로 그사람인 것이다
하지만 씨없는 수박을 만든사람은
우장춘이 아니고 교토대 기하라 히토시 라는
사람이다
천재 우장춘을 국내로 데리고 싶었던
정부는 문헌적 성과보다는 실질적 성과를
부여하고 싶어했다
그것이 바로 씨없는 수박을 만들었다는
허위적인 성과였다
우장춘을 한국으로 데려오기 위해서
정부에서는 많은 노력을 하였다
일본 또한 우장춘이 한국으로 돌아갈까봐
지키려고 감시도 많이 하였다
지금 일본과 한국의 수많은 곡식들의
종자개량이 우장춘의 손에 의해서 이뤄낸
성과이다
그나마 보릿고개가 우장춘에 의해 넘을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철저하게 일본이 이었고
친일파 였으며 역적 우범선의 자식이었다
그에게는 반쪽짜리 조국따위는 관심도 없었다

고영근의 의거는 역사책 어디에도 수록되지
못했고 그저 국민적 감정을 내세우려고
일본의 낭인들의 추접하고 더러운 내용들만
수록되어있다
그것도 제대로 찾아보지도 않고
연구해보지도 않고 그냥 상상과 추측대로
역사교과서에 수록해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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